- 스토커/킹스맨 크로스오버
- 찰리 스토커/해리 하트
1. Stay with me (나름 힐링물?)
찰리는 불안했다. 노란색 벽, 노란색 천장, 노란색 조명, 노란색 식판, 노란색 옷, 노란색 가방. 노랑, 노랑, 노랑, 노랑, 노랑, 노랑. 강박적인 노란색 일색에 찰리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다리를 떨고 손톱을 깨물었다. 도망치고 싶어도 끊임없이 따라붙는 노란색은 찰리를 세뇌시키려 했다. 그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그를 집어삼키려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색에서 도망칠 수 있지? 찰리는 노란색 우산을 만지작 거리며 끊임없이 생각했다.
까맣고 우중충한 거리에 비가 내린다. 하나, 둘 씩 거리의 사람들이 우산을 펼쳤다. 그러나 찰리는 펼칠 수 없었다. 걸을 때마다 자신의 시선을 메울 노란색 우산이 끔직히도 싫었으니까. 이를 덜덜 떨면서 쏟아지는 폭우를 맞았다. 한 아이가 그에게 다가와 그를 놀렸다. 노랭이라고. 보기 싫어. 노란색은 지껄이지도 마. 시끄러워. 닥쳐. 그렇게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있었는데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순간 찰리는 노란 우산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이를 후려쳤다. 퍽. 아이가 쓰러진다. 또 후려쳤다. 퍽, 퍽, 퍽, 퍽, 퍽.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찰리는 해맑게 웃었따. 노란 우산이 처음으로 붉은 색이 되었거든.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붉은색. 찰리는 기껏 염색한 우산이 빗물에 씻겨 나가는 게 싫었다. 노란 옷을 벗어 필사적으로 우산을 지켰다. 본인은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덜덜덜 떨면서도 우산을 품에 안고 거리를 걸었다.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이 비 내리는 노란 색 도로는. 이제는 그만 보고 싶어. 찰리는 엄마를 일고 불안해 하는 아이처럼 이리저리 헤매었다. 그때, 감자기 비가 그쳤다. 아니, 자신의위에만 비가 그쳤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만 하늘. 아니, 까만 우산. 그우산을 들고있는 까만 정장의 신사. 찰리는 멍하니 그를 보았다. 신사는 무표정했지만 어쩐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사람이라면나를 이 지긋지긋한 노란색에서 구해줄거야.
찰리는 눈을 떴다.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보인 것은 편안한색의 천장. 해리의 집이었다.
2. Dobermann Pinscher
찰리의 개는 도베르만이었다. 위풍당당하고 까맣고 윤기있는 털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해리는 찰리의 개를 싫어했다. 마치 찰리를 보는 듯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찰리는 해리의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를 닮아 귀티가 흐른다고 했다. 해리는 그럴 때마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티를 냈지만 찰리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찰리의 일과 중 하나는 해리의 개, 미스터 피클스의 털을 빗겨주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면 찰리의 눈은 섬뜩하게 번뜩였다. 어린 아이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잔인한 행동을 할 때의 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즐거움이 아직까지는 피클스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해리에게는 우스운 아이러니였다.
찰리의 애정은 언제나 그의 도베르만보다 해리의 요크셔테리어에게 향해 있었다. 그래서 해리는 그의 개가 굶어죽지 않도록 사료를 나누어 주었다. 싫어하는데도 어쩔 수 없지,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충성스러운 도베르만에게 동정을 느끼고 애정을 느꼈다. 찰리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개는 찰리와 정반대에 서 있었다. 해리는 찰리의 개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도베르만의 충성은 찰리보다는 해리를 향해 있었다. 그럴 수록 찰리는 경쟁하듯 해리의 요크셔에게 애정을 주었다. 누가 어떤 개의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미스터 피클스가 죽은 날, 찰리는 울었다. 해리는 그것이 우스웠다. 마치 세상이 끝난 듯 우는 찰리의 표정이 꾸며낸 가면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리는 제 개의 장례를 치루었고 박제해 방 한 곳에 모셔 두었다.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으려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피클스를 박제한 다음 날, 도베르만의 사료를 챙기던 해리는 위화감을 느꼈다.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던 찰리의 도베르만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해리는 기다리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관심을 거두기로 했다. 그에겐 개 말고도 신경 쓸 일이 태산 같았으니까.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사료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리는 찰리를 불렀고 그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다. 티없이 순수한 미소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찰리가 죽인 것은 해리의 개가 아니라 그 자신의 개라는 것을. 해리는 찰리를 추궁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Mr.피클스의 친구인데 친구가 죽었으니 살 이유가 없잖아요. 피클스처럼 만들어 줬지."
순간 소름이 끼쳤다. 털이 삐쭉 곤두 섰다. 그래, 찰리는 해리가 그러했듯 자신의 하나뿐인 반려견을, 아니 그에겐 반려견조차 안이었을 테지만, 해리처럼 박제한 것이다. 해리와는 전혀 다른 목적으로, 다른 과정을 거쳤지만. 해리는 찰리가 끔직하게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