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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소마츠상. 오소이치. 키워드 없음
이치마츠는 언제나 제 세계에 갇혀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장남 주제에 그런 것도 모른다고 타박해도 소용없어. 알 리가 없잖아? 녀석은 누군가 다가가려 하면 벽을 높이고 몸을 더 웅크리니까. 그게 외부인이건 형제들이건 상관 없이 똑같은데 무슨 수로 그 벽을 허물고 들어가란 거냐? 당여히 못하지. 그래서 다가가지 않앗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데 괜히 건들이는 건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다.
오소마츠에게는 그 나름의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당연히 이치마츠에게 손을 벋을 정도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제 앞 길 가늠하기 어려워도 뒤쳐진 동생들을 보살피는 게 장남이라지만 이젠 그조차도 귀찮고 지긋지긋하다. 바보라서 뒤쳐진 것도 아니고 자기가 자기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 머무르는 녀석을 이끌만큼 오소마츠가 포용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오소마츠는 그것을 핑계로 자기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치마츠가 스스로 만든 고독이 수도 없이 그를 갉아먹고 있을 줄은. 그런 줄 알았다면 그는 절대 제 동생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2. 그랜드체이스. 디오레이. 결혼식 전날
그 녀석과의 결혼은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강경파와의 균형을 위해 불가피했다. 귀족의 혼인관계란 언제나 그런 식이었고 녀석도, 나도 그 정도는 이애하고 받아들였다 생각했다. 온건파의 가장 큰 두 세력인 버닝 캐니언과 크림슨 리버의 만남은 마계의 세력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어릴 적부터 세뇌하듯 들어온 말이었다.
그런데 왜지? 새삼 불안해졌다. 그 녀석이 과연 크림슨 리버의 이름을 지킬 수 있을가? 내가 그 녀석을 믿어도 되는 걸까? 정말 이로써 강경세력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식의 것들. 그래서 불평하듯 녀석을 구박했다. 내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쭈구리처럼 굴지 마, 라고. 예전의 디오라면 울었을 테고 지금의 디오라면 인상을 지푸리고 말 것이다. 예상되는 뻔한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돌아온 디오의 태도는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것이었다.
답지 않게 걱정하는 표정을 한다. 그리고는 성큼 다가와 끌어안았다. 쭈구리의 작은 품이 아닌 성인 남자의 드넓은 품. 이제는 제 몸을 와전히 감싸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실감했다. 당황한 탓에 몸이 잔뜩 긴장한다. 그러자 디오의 손이 안심시키듯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 그렇구나. 사실은 모두 핑계다. 나 자신이 불안했던 것이다. 내 마음을, 나라는 불완전한 존재를 네가 온전히 받아줄까 하는 나에 대한 불신. 그것은 평범한 신부의 고민이지만, 또 평범하지 않은 마족의 고민이었다.
단단히 끌어안은 디오의 팔이 내 불안마저 모두 감싸안았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릴 적의 주구리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품에 절로 안심이 되었다.
3. 화이트크리스마스. 치훈재규. 리만 방정식
코시-리만 방정식. 그것은 복소수, 즉 실수와 허수가 무한히 0으로 수렴한다는 발견이다. 보이는 수와 보이지 않는 수. 이성과 감정.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의 세계가 무한히 한 점으로 수렴한다. 그것이 코시-리만 방정식이다. 치훈은 처음으로 그 수식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치훈에게 있어 재규는 허수였다. 이성의 세계만이 존재하는 치훈과 달리 그는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많았다. 세세한 것은 이성에 얽매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것은 감정에 호소한다. 치훈은 평생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그 일을 겪고 난 후로 치훈과 재규 사이는 조금 달라졌다. 각자의 세계에 갇혀 평생선을 유지하던 균형이 깨졌다. 평행선은 한 점을 향해 기울었고 두 사람은 점점 더 그 점을 향해 수렴하고 있었다.
잊혀진다는 두려움. 그것은 재규가 느꼈던 공포였고, 치훈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잊혀지면 저의 존재는 죽음을 맞히라 것이다. 그것이 정신적인 죽음이건, 신체적인 죽음이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더욱 서로를 끌어당겼다. 더 빠르게 영으로 수렴했다. 그래야 치훈의 세계와 재규의 세계가 만날 수 있으므로. 그래야만 두 세계는 완벽해질 테니까.
4. 그랜드체이스. 디오로난. 키워드 없음
펄럭, 푸른 날개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로난은 서글픈 눈으로 제 앞의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이전과는 달리 거대하게 자란 뿔과 푸른 팔이 이질적이었다. 디오 님......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마치 로난이라는 존재를 잊어버린 것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절대적인 힘으로 인간을 위압하고 차가운 눈이 인간을 얼려버린다. 무뚝뚝한 배려조차 지금은 마기에 억눌린 듯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제가 카제아제의 마기에 지배 당하던 때처럼 디오라는 존재는 마왕의 힘 아래 굴복하고 지배당한다. 자신이 아닌 것에게 제 의지를 빼앗기고 조종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로난은 그가 더 안타까웠다. 디오가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면 분명 스스로를 책망할 테니까. 자신이 그러했듯 제 죄를 짊어지고 평생 괴로워할 테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뿐이다. 그가 괴로워 하지 않도록 그를 막는 것뿐. 티르빙이 푸른 빛을 내며 예리하게 빛났다.
5. 마블. 스토니. 겨울
겨울은 달갑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친애하는 오랜 친구의 죽음. 자신을 믿어준 여인과, 그 마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인연. 스티브에게 겨울은 혈청이 남긴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겨울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매서운 바람에 차가워진 손끝을 감싸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제 체온을 찾는 그의 손이 떠오른다. 자신과는 연이 없을 것 같던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도 그 옆에서는 가깝게 느껴진다. 캡시클이라 놀리던 말도 이제는 친근하게 들린다. 분명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괜찮아졌다.
과거를 잊은 것은 아니다. 이별의 기억이 옅어진 것도 아니다. 추억의 무게를 잊은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물론 화가 났다. 그가 가볍게 뱉은 캡시클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수많은 스티브의 조각들, 그 무게를 가벼이 놀리는 그가 싫었다. 하지만 그를 겪고 모든 것이 변했다. 이따금씩 생각하게 되었다. 겨울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겨울이 있기에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저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잃어버린 것들이 있었기에 지금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라고.
6. 프로즌. 엘산나. 얼음성
어릴 적 부모님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있었다. 얼음성에 사는 눈의 여왕이 카이라는 소년을 잡아가 그의 마음을 얼려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안나는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엘사가 스스로 자신을 방에 가두기 전까지는 밤마다 둘이서 무릎을 모으고 들었던 이야기였으니까. 엘사는 안나의 손을 꼭 쥐고 이야기가 끝날 즘 말하곤 했다.
얼음여왕은 바보 같아. 왜 소년의 마음을 얼려 버린걸까? 친구가 되자고 말하면 언제든 그녀의 친구가 되어 줬을텐데. 만약에 내가 얼음여왕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야. 혼자 얼음성 안에 갇히는 일도 없을 거야.
응! 언제나 내가 언니 곁에 있을테니까!
그래. 우린 언제나 함께 할테니까.
안나는 엘사의 손을 세게 마주 잡았다.
오지 마, 돌아가, 안나. 엘사는 안나를 밀어냈다. 자신을 홀로 얼음성 안에 가두고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냈다.
안나가 다칠까 두려워, 사랑하는 내 동생. 내가 너의 마음을 얼려 버렸는걸. 나는 그 동화 속의 얼음여왕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너의 마음을 얼려 버리면 누가 너를 구해줄 수 있을까?
엘사는 홀로 차디 찬 얼음성 한 구석에 무릎을 끌어 안고 몸을 웅크렸다. 아렌델의 성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7. 레카네. 로키리나. 짝사랑
몇 번 째일까? 아니 몇 번이라는 가벼운 숫자로 셀 수 있을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 새엔가 당연한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는 언제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기에 그의 세계에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오라버니. 아무도 듣지 못하게 읊조려 본다. 이 단어는 유일하게 자신에게 허락된 특별함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닿을 리는 없었다. 서글프지는 않다. 언제나 그래왔기에 오히려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다. 이 감정을 잃으면 마음 한 쪽이 공허하게 느껴질만큼.
그가 뒤를 돌아본다. 항상 동경하던, 바라봐 주길 간절히 원했던 눈동자가 저를 향한다. 그의 미소가 자신을 향해도 따라 웃을 수 없다. 그저 멍하니 바라 볼 뿐이다. 그가 뒤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는다.
오늘도 로키 리드와 리나 리드 사이의 거리는 좁아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평행선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