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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단문 리퀘2

감송향 2017. 1. 10. 20:21

1. 토도데쿠 (빌런 토도로키 쇼토/히어로 미도리야 이즈쿠GS)

 싸늘한 한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절대영도의 추위가 이런 걸지도. 몸이 얼어 붙는 추위에 숨을 몰아쉬었다. 공기까지 얼어버린 건지 가슴이 답답했다. 역시 그 때 토도로키 군이 내민 손을 잡았으면 좋았다. 이즈쿠는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는 토도로키의 체온을 떠올렸다. 지금 만진다면 토도로키는 겨울날의 호수보다 더 차가울거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미도리야 이즈쿠. 토도로키 군은 너를 위해 그렇게 싫어하는 불의 힘까지 쓰려 했는데....

 그 때 자책하던 토도로키를 끌어안았다면 그가 빌런이 되는 일따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좋은 동료이자, 연인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팽창해 깨져버린 유리창처럼 산산조각나버렸다. 이제 토도로키는 연인이었던 이즈쿠를 향해 사나운 냉기를 뿜으며 서 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뿐임을. 이즈쿠는 다리를 벌려 단단히 몸을 지탱하고 세게 주먹을 쥐었다. 힘이 주먹 끝에 몰리는 게 느껴졌다. 미안해, 토도로키 군. 이번엔 내가 너를 구해줄게.


2. 긴히지 (구미호 긴토키/텐구 히지카타 토시로)

 푸드덕, 푸드덕. 긴토키는 요란한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 봤다. 뭐야, 잘 자고 있는 긴 상 꼬리털을 건드리는 게 대체 어디 사는 놈팽이야? 강렬한 햇빛 때문에 형체가 정확히 보이질 않았다. 긴토키는 짜증스레 역광을 받은 채 하늘에 떠 있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커다란 날개를 가진 새 비스끄무리한 것이 퍼덕거리는데 영 시원치 않은 날갯짓이었다. 대체 저 어설픈 날갯짓은 뭔지... 긴토키는 혀를 끌끌 차며 새라고 혼자 규정지은 그것을 보았다. 계속 보았다. 보고 있는데..., 어라? 저 멀리서 푸득거리던 새가 점점 거대하게 보이는 건 왜지? 뭔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지 않나, 저거? 그제야 잠이 확 깬 긴토키는 후다닥 일어나 옆으로 기어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긴토키의 움직임보다 중력의 힘을 받아 추락하는 무언가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우당탕탕. 결국 긴토키는 떨어진 거대새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내야 했다. 아야야. 이게 웬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야. 긴토키는 세게 부딪힌 머리를 문지르며 제 몸 위에 쓰러진 무언가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검은 날개에 검은 옷을 입은 그것은 새가 아닌, 남자였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요력이 그가 평범한 요괴는 아니란 걸 알리고 있었다. 설마 이 녀석 텐구인가? 옆에 쓰고 있는 가면도 그렇고 까만 까마귀 날개도 그렇고 입고 있는 복장이나, 전형적인 텐구의 모습이었다. 텐구는 요괴들 사이에서도 전설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 돌 정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희귀한 존재들인데 왜 인간세계와 가까운 이 숲에...? 뭐라고 한 소리라도 해줘야 겠다.

 긴토키는 일단 자기를 세게 누르고 있는 무거운 텐구를 옆으로 치웠다. 무어라 소리치려 숨을 들이킨 순간, 그의 붉은 눈에 길게 찢긴 상처가 보였다. 앞쪽부터 날개까지 깊이 베인 심각한 상처였다. 이상한 날갯짓은 이것 때문이었나. 무엇에 베인 건진 몰라도, 아마 요력이 담긴 물건이었을 거다. 텐구사냥에 당한 게 분명했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지간히 약한 녀석인가 보다. 긴토키는 여우구슬을 입에 물고 남자의 입술에 키스했다. 요력이 담긴 여우의 입김에 커다란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고 있었다. 텐구한테 큰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이 구미호님의 요력을 받았으니까, 텐구가 이 은혜를 무시하긴 어려울 거다. 빨리 일어나라고, 약해빠진 텐구 녀석아. 이 긴 상은 귀찮은 일은 질색이거든? 너랑 있다가 괜한 일에 얽히기 싫으니까 빨리 일어나라. 핀잔을 주듯 투덜거리며 긴토키는 부드러운 손길로 남자의 윤기나는 검은 머리칼을 어루 만졌다.


3. 오키히지

  짜증이 났다. 헐렁한 주제에 있는 폼은 다 잡고, 버거워 하는 주제에 묵묵히 모든 걸 혼자 짊어지는 고집이. 적어도 자신이 하나 즘은, 아니 수십 개는 더 짊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녀석은 자신에게 무엇 하나 떠맡기지 않았다. 그게 누님에 대한 성의, 그리고 자신에 대한 책임감임을 안다. 하지만 제 나이는 이미 열여덟을 넘겼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던 체격차도 뛰어넘은 지 오래가 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자신은 히지카타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하고 아마 그건 그도 인정할 터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그에게 있어 그 시절의 꼬맹이였다. 그게 분하고 짜증났다. 나는 너에게 닿기 위해, 네가 짊어진 짐을 나누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왔는데.

  여기서 기다려라. 이건 내가 책임질테니까.

이가 갈렸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부장자리에, 또 자신이 1번대 대장 자리에 서 있기에. 당신은 이번에도 나를 감싸려 하고 나는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음에... 그 무력함에 나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4. 토도데쿠 (연상연하, 동거하는 토도로키/미도리야 GS)

  이즈쿠. 밥 먹어.
  응! 잠깐만 오빠!

  닫힌 문 너머로 들려오는 미도리야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밝고 친근했다. 토도로키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밥과 국을 보며 한순을 푹 쉬었다. 동거생활을 시작한 지 1년 째. 이 생활에 큰 불만 같은 건 없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잘 맞추며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에게 권태기는 조금 먼 이야기라고 토도로키는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조금 섭섭한 것이 생겼다. 아주 사소하지만 매우 거슬리는 것. 바로 호칭이었다. 처음엔 토도로키 선배로 시작한 호칭은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빠로 바뀌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가 오빠라고 불러주는 호칭에 로망이 있다지만 토도로키의 불만은 오히려 그 호칭에 있었다.

  미도리야가 그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가까워졌음을 부정할 순 없었지만 문제는 그 거리가 지니치게 가까웠다는 데에 있었다. 마치 친오빠를 대하듯 너무나 편하고 거리낌 없는 뉘앙스의 호칭은 두사람의 관계가 연인이 아닌 남매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물론 그런 편한 관계도 동거관계에선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부족하고 아쉬었다. 조금은 두 사람 사이에 긴장감 같은 것이 흘렀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넌지시 말을 꺼내려다가도 미도리야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릴없이 토도로키는 오늘도 푸욱 한숨을 뱉었다.

  달깍. 문이 열리고 편한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미도리야가 식탁 앞에 앉았다. 역시 말하고 싶지만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이름을 작게 읊조리다가 응? 하고 되물어오는 목소리에 다시 입을 닫았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숟가락을 내려놓고 묻는 그녀의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표정에 불만이라도 드러난 건가? 다급하게 표정을 고쳐 보려 했지만 지금 자신이 짓고 있는 표정도 어떤지 알 수 없었고 다른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말을 하기 전까진 미도리야가 식사를 다시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아 토도로키는 하염없이 식어가는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어려웠다.

  정말 무슨 일 있어, 오빠?

  이름도 없는 오빠라는 단어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 있을까? 넘긴 밥알이 위 속을 돌아다니는 듯했다. 이대로는 먹은 밥이 얹힐 것 같아 자리를 피할까 숟가락을 드는데 무심코 마주한 미도리야의 시선이 낯부끄러울 정도로 똑바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끄응. 토도로키는 쥐었던 숟가락을 다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결연한 눈빛이 마치 말하지 않으면 이 침묵이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 말하는 것 같았다. 미도리야가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토도로키로선 절대 이기지 못했기에 그는 결국 패배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이즈쿠...

  미도리야를 부르는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나긋하면서도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응.

  나는 경청하고 있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미도리야의 모습에 토도로키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음을 직감했다. 그래, 말하자. 토도로키는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쥐었다.

  호칭 말이야. 오빠라던가 토도로키 선배 같은 호칭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나도 네게 이름...을 불리고 싶어.

  드디어 말했다. 토도로키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마주한 미도리야의 눈이 한껏 커져 있었다. 어쩐지 얼핏 본 귀 언저리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흐른 정적은 덩달아 제 얼굴마저 붉게 물들었다.

  그... 그, 그게... 그... 쇼... 쇼토 군...이나 그렇게 부르면... 될까?

  한껏 부끄러움을 담은 목소리였지만 그 어색함과 긴장감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제 얼굴도 못 봐줄만큼 빨갛게 익어버렸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은 어쩐지 듣기가 좋았다. 오늘따라 밥이 유난히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