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2.5D

[설정자료] 세계1차대전

감송향 2013. 9. 13. 21:40

 


1. 발발 원인


 

아직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여러 설이 있으나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은 적극적인 대외진출 정책을 추진하면서 영국의 강력한 해군력을 목표로 해군 강화에 힘썼다. 이 때문에 영국과 독일은 해군력 경쟁(군함건조 경쟁)이 붙었다. 또한 독일은 투르크로 진출하려 하고 있어 러싱와 프랑스와도 대립의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를 틈타 영국은 1904년 러일전쟁 때 에드워드 7세가 프랑스와 손을 잡아 영프협정을 맺게 되었다. 영국은 이집트에서, 프랑스는 모로코에서 우월권을 인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협정은 모로코에의 진출을 꾀하던 독일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발칸반도는 전쟁의 불씨가 잠들어있는 곳이 되었다.

 

게다가 발칸 지역에서 1908년 투르크 혁명을 틈타 불가리아가 완전독립을 선언했고,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했다. 러시아의 후원을 받으며 이 지역의 통합을 꿈꾸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이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와 독일의 범 게르만주의 대 세르비아, 러시아의 범 슬라브주의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 이후로 트리폴리 전쟁, 제1차 발칸전쟁과 같은 크고 작은 전쟁이 반복되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세르비아인의 감정은 발칸반도의 문제로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1914년 6월 28일 일요일에 오스트리아의 새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하였다. 황태자 방문 기념의 군사훈련은 세르비아 인들을 더욱 화나게 하였고, 한 세르비아 인 학생 프린치프가 황태자 부부를 향해 총격 암살을 시도하였고, 15분 뒤인 11시 30분에 황태자 부부는 사망했다.

 

이 당시 유럽은 자살, 혁명, 암살이 팽배하고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판을 쳤으며 이러한 것들이 미학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합스부르크의 황제 요제프의 부인인 황후 엘리자벳 또한 무정부주의자 루이지 루케니에 의해 살해당했고, 황제 부부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전 황태자 루돌프 또한 마이얼링에서 자살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헝가리는 혁명을 울부짖으며 독립을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암살당했다는 보도는 유럽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사라예보 사건은 발칸 반도 전체를 전운에 휩싸이도록 하는 발화점이었다.

 

 


2. 진행


 

 

 


3. 영국의 상황